시사/극히 개인적인 생각

노조 바깥

감기군만쉐 2017. 6. 4. 11:09

손잡고에서 반값에 보여준다길래 <작전명 C가 왔다>를 보러 갔었다. 노조파괴 회사로 악명 높았던 창조 컨설팅을 소재로 노조 파괴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낸 연극이다. 기존의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파업 및 공장 점거 농성을 유도해서 이 틈을 어용노조를 이용해 뚫어내려 하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이 연극과는 약간 방향이 다른 생각을 했다. 노조를 만들 수 있는 환경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사실 노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은 이 대열에 끼어들기 힘들다. 고용 불안정 상태이기에 쉽지 않고 심지어는 정규직 노조를 만든 사람들이 비정규직 쪽을 배제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비정규직은 그 회사의 사원이지만 일할 때에는 그 회사의 사원, 문제가 발생했을 때엔 다른 곳의 직원이 되어버리는 하청 파견직은 아예 노조를 만들 생각조차 못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배달앱과 계약한 배달부들은 아예 직원조차 아닌 개인사업자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회사로부터 배상을 받는 것조차 힘겹다. 이런 식으로 자본은 점점 더 자기의 책임이 미치지 않는 고용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든다고 떠들고는 있지만 고용 방식은 점점 더 편법적인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는 판에 일부 눈에 띄는 곳만 상승하는 것처럼 보일 뿐 밑바닥 또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 또한 현대자동차의 경우처럼 원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과 소송의 결과 이미 정규직 전환을 인정받은 경우가 문재인 정부 와서 생색내듯이 이루어진 경우가 상당하다. 이 과정이 있기까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워야 했고 불이익이 너무 큰 나머지 운동을 그만두거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극단적인 경우 생을 마감해야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앞서 말한대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깎여나갈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노조 전체가 투표로 비정규직과의 관계를 끊자고 결정할 정도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처럼 그나마 빛이라도 보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선 비정규직은 단결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일 뿐이다. 하청 노동자들의 경우는 더 심하다. 하청의 경우 노조를 만들면 원청에서 그 회사와의 계약을 끊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면 게임오버다. 뭘 더 볼 것이 있나. 그러니 그 협박하는 회사에 나와있는 파견직은 눈칫밥이라도 먹으면 다행 아닌가. 전에 일어났던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에서 사망했던 분들도 파견직이었고 주 78시간에 달하는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다. 



배달앱과 계약한 노동자들의 경우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배달앱 쪽에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가게의 배달직원으로서 일했던 직군이 개인사업자가 된 이후 자기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 게 편할 수도 있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 일도 어떤 일이 발생했을 경우 그것에 대한 책임을 회사 쪽에 묻는 일도 쉽지 않다. 알바노조 같은 것이 결성이 되어도 쉽게 그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데 이런 상황에서야... 심지어 독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그 쪽으로 손을 뻗었다는 것 같다...
물론 노조를 만들고 지켜내려 했던 분들의 노력과 수난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 바깥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다들 무관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깥쪽에서 소리가 나지 않으니 관심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아니라 내지 못하는 것이라면? 사실 내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이라면?

자본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점점 더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자동화의 가속과 함께 노동의 파편화가 진행되고 있고 사람들은 이를 딱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듦과 동시에 남은 일자리의 안정성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돌아봐도 알 수 있을 법하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인지 일자리를 늘리라는 요구만 할 뿐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양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 같다. 여차하면 노조를 만들어야 된다 아니다가 우스워질 수도 있다.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노동자가 없게 될지도 모르니깐.

어제 연극 끝나고 이루어졌던 GV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연극 주제에서 너무 벗어나는 것 같아서 관뒀다. 질문한다고 해서 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내 성격에 이런 자리에서 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여 단결하라 외엔 답이 없는 걸까? 단결하지도 못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