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극히 개인적인 생각

민주주의가 무너질 가능성

감기군만쉐 2017. 6. 1. 00:53

최근 필리핀 쪽에선 IS의 창궐로 인해 계엄령이 선포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 뭔가 임팩트 있는 말을 하지 않으면 버기지 못하는 두테르테가 계엄군에게 여자 세 명 정도는 강간해도 된다는 말을 하면서 구설수에 올랐지만 이보다 더 임팩트 있는 말은 계엄이 법으로 정해진 두 달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필리핀에선) 1987년 헌법 체제 이후로 대통령은 국회의 파기 가능을 전제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으며 이 기간은 두 달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필리핀 남부에 건 계엄령이 일 년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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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보고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라이 대통령이 군경을 지휘하는 사람들과 친분이 깊어서 사소한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한 뒤 장악한 군경을 통해서 국회를 장악·해산시켜 버렸을 경우 과연 시민들은 얼마나 이에 저항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저항은 있어도 성공은 불가능하다. 국회의 힘부터도 그렇다.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국회가 파기해 버릴 수 있는 조건이 애매모호하다. 정말 국회가 이 계엄령을 파기할 수 있는 건가? 역대적으로 일어났던 쿠테타를 생각해도 국회는 아무 힘이 없었다. 그저 쿠테타를 일으킨 세력이 주도하는대로 국회는 파괴되고 다시 입맛에 맞게 세워졌다. 언론의 경우 가장 먼저 장악될 것이고. 시민들의 시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군경을 또라이 지도자가 주도해서 강력한 진압을 선보일 경우 지난 겨울 내내 이어졌던 촛불시위는 불가능해진다. 군경이 강으로 밀어붙인다면 시민들도 강으로 대응하는 쪽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 그럼 결국 강력한 폭력을 가지고 있는 쪽이 유리해진다. 



군대가 쿠테타를 일으킬 경우 이를 막을 만한 힘이 있는가 생각하면 더욱 막막해진다. 실제로 한국에서 일어난 쿠테타인 12.12.와 5.16.을 생각해 보면 정부 측에 충분한 시간과 수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사태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서 쿠테타 세력이 그대로 밀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경우였다. 지금이라고 그런 게 불가능할까? 이런 쿠테타가 벌어질 경우 위에 말한 국회·언론·시민의 저항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야말로 강에 의한 장악이기 때문이다. 12.12.를 완성시키는 5.17. 쿠테타의 결론이 5.18.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평화로울 때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지만 이 평화가 깨질 경우 이것에 의해 가장 먼저 무너질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 제도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스켑틱 2호 '테러리즘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 중에서


하지만 강 대 강의 대결로 가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기 전에 군경의 구성원들이 이런 행동에 얼마나 따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민주시민 교육이 잘 이루어진 곳일수록 자신들이 엉뚱한 사건의 가해자로 동참하는 것을 꺼려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애국이 아니라 애민이 동반된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다면 역시 그렇지 않을까? 저항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겨울처럼 모두 다같이 나와서 한마음으로 외친다면 군경의 구성원들이 위에서 까란다고 까고만 있을 수 있을까? 위에 써놓은 걸 전에도 써보려다가 걸렸던 부분이 이 지점이다. 물론 내가 말한 수준이 성취되지 않은 독재국가나 내전, 가난 등으로 그럴 여유가 없는 나라는 이러기 힘들겠지만 지금 어느 정도 민주주의의 확립이 이루어진 나라에서 이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한국 내에도 이런 노답 새끼들이 남아있는 게 현실이지만...


결국 민주주의는 단어의 뜻 그대로 주인인 인민들이 지키는 것 외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인민들이 지키지 못한다면 그 곳은 인민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위한 곳이 되어버리니깐. 맨처음에 걸었던 전제조건만 지켜도 상당한 방어벽을 치게 되는 셈이다. 또라이를 뽑지 않는 것 말이다. 거기에 감시와 비판이 있으면 더 좋겠지.


원래는 그냥 디스토피아적으로 쓰려고 했는데 마냥 그렇게만 쓰기도 힘든 것 같고 왠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래부분에 쓴 내용이 정말 독재자가 다시 나타났을 때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독재자가 나타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이상하게 사람과 사회는 그런 존재를 어느 날 갑작스럽게 등장시켜 버리니깐... 그런 갑작스러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트럼프를 대하는 미국의 제도처럼 탄탄한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고 뽑힌 사람이 선인이기만을 기대하는 것은 후진적 민주주의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다만 지금 논의되는 개헌은 그런 수단이 절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