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극히 개인적인 생각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바닥

감기군만쉐 2017. 2. 22. 02:36

울산에서 진도 5.0의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나도 방에서 의자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의자가 조금씩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엔 내가 어지럼증을 겪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뒤 울산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그 때 서울에서 느꼈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건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두 달이 지난 후 경주에서 이를 뛰어넘는 지진이 연달아 일어나고 여진도 세 자리 숫자를 기록했을 정도로 계속해서 발생했다. 그 결과 지진에 대한 불안이 사람들 사이에서 솟구쳤다. 특히 울산 경주의 경우 잘못하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밀집도를 자랑하는 핵발전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바다 건너편에서 바라봤던 사람들로선 더더욱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덤으로 그 전부터 준비해 와서 12월에 개봉한 영화 <판도라>도 경남 지역에 지진이 크게 발생하며 핵발전소 뚜껑이 날아가 버린 것을 사람들이 목숨바쳐 더이상의 방사능 확산을 막는 이야기다...) 나도 이와 비슷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몰아서 들은 김영오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가슴에 담아온 작은 목소리>에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매뉴얼은 없었습니다) 들어보니 정말 막막했다. 자주 드나들던 건물이면 모를까, 생소한 건물의 경우 어디가 출구인지 찾기가 여간 쉽지 않다. 더구나 지진 같은 긴급상황이라고 생각해 보면 눈이 멀쩡한 사람도 헤매기 십상인데 눈이 불편하면 더욱 힘들다는 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책상 같은 곳 밑으로 들어가는 것 뿐이다. 건물이 튼튼하게 버틴다면 모를까, 부실할 경우 책상 밑으로 숨었다가 그냥 건물에 깔려버릴 수도 있다. 장애인인만큼 대피훈련 등을 많이 해서 만약의 사태에 더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하는데 그나마도 거의 없고 해도 형식적이라고 한다. 일본에선 한 달에 한 번 실시하도록 되어있다는데... 

시각장애인은 그나마 다른 곳은 불편하지 않은 경우를 뜻할 확률이 높으므로 여차하면 몸으로라도 때울 수 있다. 하지만 지체장애인의 경우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조금 다르지만 장성 요양병원 화재 같은 일이 일어날 경우 제대로 대피를 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면 막막하다.) 그런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기껏해야 야간타율학습에 묶여있는 학생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또라이 교장들을 질책하는 데에 그쳤을 뿐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내 기억에 전혀 없었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나오지 않았고... 장애인을 무리하게 장애우라고 부르면 뭐 하나? 탁상공론에 장애인들만 더 깊은 상처를 입었고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조차 신경쓰지 않는다.(저상버스에 대해 일부 의자가 높이 설치된 것을 항의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는데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이상한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면 일반버스와 저상버스를 탈 때 어떻게 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공무원 시험을 보는 장애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장애인 전형의 경우 합격라인이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낮다. 필기는. 면접으로 들어가면 장애인들에게 어떠한 배려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냥 비장애인들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알아서 기어올라와 보라는 듯이 매우 평등한(?) 환경을 제공한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 승강기 같은 시설이 없는데 2층에서 근무를 볼 수 있냐고 물어본다.(너 탈락이란 뜻이다.) 그 결과 다들 면접에서 떨어지고 지자체들의 장애인 고용비율은 형편없어진다. 의무고용비율이 있지만 그건 감사 때 임시직을 고용해서 때운다. 감사가 끝나면 알 게 뭐냐.(그나마 이런 길에 도전할 수 있는 장애인들은 다른 장애인들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요즘 계속해서 동물권을 보장해야 된다는 말이 나오면서 다른 동물들이 보호받는가가 인권의 수준 또한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동의하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다른 동물들보다 더 낮은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널려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동물들(특히 개와 고양이)은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있지만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 먼 곳에 존재하기 때문 아닌가 싶다. 밑바닥이 높아야 천정도 같이 높아질 수 있는 법인데... 다들 날아다닐 수 있어서 바닥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