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극히 개인적인 생각

본래의 목표는 중요하지 않은 그들만의 플랜

감기군만쉐 2017. 4. 17. 02:41

김어준이 <더 플랜>이란 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는데 이에 대한 반박이 계속해서 올라오자 아니나 다를까 이 반박을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매우 논리적인(?) 댓글로 반박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보지 않고 쓴 글이라느니(실제로 보기 전에 쓴 것으로 생각되는 글에 이런 댓글을 달아도...) 김어준 인상비평에 그쳤다느니 전혀 반박이 되질 못한다느니... 그런 댓글들을 보면서 과연 저 사람들에게 논리적인 반박이란 것이 보이긴 하는 건가 싶다. 

대선 이후 쭈욱 있어왔던 개표조작 논란은 지금의 문재인 지지자 대 안철수 지지자가 싸우고 있는 맥락과 일치한다.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졌다는 것이다. 문재인 지지자는 안철수가 갑작스러운 사퇴 이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는 식으로, 안철수 지지자는 문재인 측이 대선 때 무능하게 나왔으며 대선 국면에서나 그 후 새민련 내에서 일어났던 일에서나 친노패권주의가 안철수를 압박했다는 식으로 가고 있다. 개표조작 논란은 이런 싸움조차 흩날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처음부터 표를 의도적으로 잘못 세었다면 (문재인 지지자들이 보기에)당선되는 것이 당연했던 문재인이 이명박의 잘잘못을 따질 수 없게 만들어지는 것을 원한 이명박 정부 하의 선관위에게 모든 책임을 떠물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쪽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멋지게 증명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해 아무리 정론을 내세워 봤자 말싸움만 거세게 붙을 수 있을 뿐 생산적인 결론은 나올 수 없다.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심증은 이미 굳혀져 있는 판국이니깐. 정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내세운다 한들 허공에 그려진 그림은 누가 흩트릴 수 없다. 그 논리를 뛰어넘는 음모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애시당초 세세히 따져서 틀린 점이 있다 한들 그들에겐 그런 것보다 대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재밌는 건 결국 대의가 이루어진다 한들 뭐가 개선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자개표가 안 되니깐 수개표를 하자? 순수하게 수개표를 하는 방식은 20세기에 주로 이뤄져 왔는데 그 당시 했던 수개표들이 어느 정도 신뢰성을 가졌는가 생각해 보면 그냥 참담하다. 그리고 다들 사실을 무시하는 건지 전자개표를 거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전자개표를 마친 표를 검토하는 수개표는 이뤄지고 있다. 그럼 예전에 했던 수개표도 지금 하고 있는 수개표도 못 믿겠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나. 다른 방식의 수개표는 뭐가 있는 거지? 심지어 <더 플랜>에서 제기한 건 미분류표, 그러니깐 전자개표기에서 인식하지 못한 표 중에 완전히 무효표는 아닌 것이 박근혜에게 더 많이 갔다는 논리라는 것 같은데 그거 다 수개표로 재분류되는 거지... -_-; 투표소에서 수개표를 하면 신뢰를 과연 높일 수 있을까? 한 곳에 모아서 하지 않고 분산될 경우 더 많은 감시의 눈이 필요한데 그런 경우 더더욱 조작의 위험성은 커지게 된다. 결국 문제제기를 위해 대안을 깔아뭉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쫄리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을 하지만... 그냥 의견이 순환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 선관위 개갞끼로 가는 것 외에 다른 결착점이 없다.

이 일 저 일 들쑤셔 보면 이상하다 싶은 것이 없을 리가 없다. 어떤 일이든 모순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순을 과장시키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순과 합쳐서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모순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람에겐,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들에게도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할 수 있는 일의 역량은 모든 것을 합쳐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비용을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모순에 쏟아버린다면 원래 해결해야 될 모순도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전에 자로라는 사람(예전엔 트위터 맞팔했던 사람인데... 하긴 나한테나 그 사람한테나 별 의미 없나)이 여덞 시간이나 되는 대용량 영상으로 퍼뜨렸던 세월호 충돌침몰설이나 김어준이 말하는(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세월호 고의침몰설 같은 걸 주장했다지...) 전자개표기 오류를 이용한 개표조작 가능성이나 비슷하다. 결국 제대로 된 증거는 없는데 몇몇 애매모호한 증거를 통해서 그럴 듯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과학에서도 당장의 확증은 없지만 계산상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 제시된 후 한참 지나서야 입증되는 경우가 꽤 있지만 앞의 것들이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이나(결국 충돌 흔적은 보이지도 않았음...) 공정한 선거진행(점점 덮여진 국정원 댓글...)에 도움이 될까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런 것에 도움을 준 비중으로 따지면 차라리 정부의 비중이 훨씬 높다. 개표조작의 가능성을 제기함으로써 개표조작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있긴 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개표조작을 막는 효과보다 시민들이 자기 표가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는 불신이 더 강해진다. 불신이 강해지면 기꺼이 투표소에 입장하겠는가 아니면 선거를 거들떠 보지도 않겠는가? 아무리 봐도 전자의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대선 때 개표조작이 있었다면 딱히 전자개표기를 바꾸거나 하지도 않은 채 치뤄진 2014 지방선거와 2016 총선, 그리고 재보선들은 다 뭐였나 싶다. 특히 2016 총선에서 새누리의 힘이 대폭 줄어든데 이어서 탄핵 국면으로 이어지자 총선에서 위기를 느꼈던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다른 정당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 결과 박근혜-최순실의 탄핵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정말 개표조작이 가능했다면 그 당시 떠돌았던 이야기처럼 새누리가 이백 석, 아니면 너무 눈치 보이니 과반 이상이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럼 자연스럽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힘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문재인이냐 안철수냐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올 수 있는 자리마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전자개표보다 수개표를 더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전자개표는 기록이 바로바로 남지만 수개표는 사람이 세는 것으로 끝난다. 기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김어준이 하는 말을 보지 않게 된 것은 위에 말한 기회비용과 관련이 있다. 일견 타당한 분석과 예측이 도는 것 같아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걸 굳이 봐야 되는 이유와 효용성이 뭔가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계속해서 보면 재밌고 시원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걸 보고 있어봤자 결국 어디로 가는 것이 맞는 건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기껏 찾은 출구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사례가 쌓이다 보니 결국 접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출구를 자신들이 원하던 방향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대선 패배의 원인도 마찬가지다. 원래대로라면 우리가 이런 점에서 잘못 말한 것 같다, 유권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같은 이 이상 할 것이 뭐가 있나 싶은 복기보다는 누가 선거에서 제대로 돕지 않았다, 선거를 열심히 해도 그 사람들은 어차피 우리를 찍지 않았다, 기관에서 댓글 조작을 한 게 결정적이었다, 잠깐 그 기관 중에 선관위도 들어가네?로 흘러갔다. 이것을 찔러서 인기를 모으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진실이 뭔지, 진실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는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진실이 밝혀져 봤자 결국 얻는 건 없고 정말 얻으려고 했던 건 다른 곳으로 날아간 후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