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극히 개인적인 생각

꿇는 것만 기대하는 한국식 민주주의

감기군만쉐 2017. 4. 7. 13:07

친노에 속하는 걸로 생각되는 페이스북 계정 구독을 해지했다. (이름뿐인) 친구관계는 유지되니 페이스북 타임라인 들춰보면 볼 일도 있겠지만 그 계정에서 뭔 글이 올라올 때마다 일일이 보게 되는 글에서 내 생각과 완전히 배치되는 의견이 진리인 것 마냥 내세워지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기엔 내 속이 너무 좁은 것 같다.

매번 선거철이 될 때마다 왜 이리 똑같은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딱히 다툼의 여지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번 대선에서조차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을 멍청이 취급하고 정권교체하려면 미시적으로 따지지 말고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찍어야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판을 친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없는 인간들이고 자신이 하는 판단은 구국의 결단이라도 된다는 건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다른 사람들이 지지하길 꺼려하는 것은 결국 그 후보가 지지층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큰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 결국 그 후보에게 잘못이 없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그 사람들을 조롱하는 데에 그쳐버린다. 이러니 이야기가 될 리가 만무하지. 사람들 간의 계속된 의사소통이 민주주의 발전의 전제조건이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동시에 우리들의 독재를 외친다.

선거 때 연대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기엔 별반 다르지 않다"를 내세워서 모든 당을 다 합쳐야 된다는 듯한 괴상한 논리는 쉽게 말해서 "내 밑으로 다 꿇어"이다. 자기가 지지하는 세력이 다른 세력 밑에 들어가서 굽신거리는 걸 좋아할 사람들은 없으니깐. 같이 하자가 아니라 표 계산만을 내세워 합쳐야 한다는 논리 하에 표가 적은 정의당 등은 무조건 희생양이다. 자기들이 밑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면서 상대방은 기꺼이 들어오리라 생각하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생각을 해봐도 잘 모르겠다. 결국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보기에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대충 내세운 슬로건 같은 걸로 판단한 것일 뿐 같은 당 내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 사람들이 다 자기 밑으로 꿇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참 웃긴다. 시민의 명령은 개뿔, 그냥 길거리에 있으면 지나다니는 아저씨, 아주머니다. 뭉치면 문자 테러나 저지르는 사람들이고.

민주주의의 꽃은 투표라고 하지만 결국 거기에서 그쳐버리니 한국식 민주주의에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치적 참여도는 밑바닥이고 한국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방불케 하는 표 계산 열기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모두 원래의 생업으로 돌아가 버린다. 결국 정치는 정치가들만 하는 거고 사람들은 관전자의 존재에서 벗어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시 정치와 사람들 간의 간극은 드러나버리고 다시 정치불신 및 혐오는 커져간다. 그럼 사람들은 또다시 이런 세상을 구해줄 이의 손길을 기다린다. 개뿔이,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다.

우리미래라는 새로운 청년중심정당에서 개최한 박주민 의원과 김제동 씨의 토크쇼에 갔는데 그 때 이런 질문이 나왔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도저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뭘 하겠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소속 정당이 어디라고 해서 찍어주는 것이 맞냐고. 지방자치에서부터 이런 실정이다. 그냥 위에 있는 몇몇 사람들만 보다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건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고 결국 번호만 보고 찍는 투표가 되어버린 채로 존속하고 있다. 지방의회 의원은 고사하고 구청장, 군수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 될지도 막막하고...

유시민 씨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도입되는 치열한 과정이 한국에선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라 설명하지만 과연 한국에서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되는가 파악하고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많다. 사실은 다들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