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7/12/31 강렬한 향신료에 감싸인 속 빈 강정

감기군만쉐 2023. 3. 22. 13:37

<신과 함께> 만화는 한번도 본 적이 없고 그저 작가가 어디에 들어가면 그 곳이 폭망한다는 전설(?)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만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를 봤을 때 보통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원작은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지?"와 "또 볼 일 없겠네.". 그리고 이번에 본 건 후자였다.
CG에는 엄청나게 정성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좋게 봐줄 만한 건 그것 외엔 없었다. 거기에다가 신파를 아주 강하게 넣어주면 완성이다. (워낙 강해서 그런지 극장에서 다른 자리에 있던 아저씨로 추정되는 분이 꺼이꺼이 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서 더욱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CG와 신파를 빼면 이렇다 할 만한 것도 없는 등장인물들이 평면적인 스토리를 밟아나가는 정도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소방관으로서 아들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 와중에 죄악의 대상이라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정도? 그리고 죄악의 대상이라 볼 수 있는 것들도 이걸 왜 굳이 죄악이라고 집어넣는 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는데 주인공이 사고로 죽은 동료의 딸을 격려하려고 거짓 편지를 썼으므로 거짓말을 한 거다라는 논리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단죄한다면 도대체 뭔 말을 할 수가 있는 건가 싶다. 거기다가 변호하는 쪽이 그걸 가지고 주인공에게 미쳤냐고 물어본다니 이 또한 어쩌라는 건가 싶고... 이 외의 죄도 마지막 두 개를 뺀다면 그냥 어이없는 기소와 신파적인 변호, 썰렁한 결판으로 끝난다.(아니 뭐 마지막 두 개도 신파와 썰렁함은 똑같다.) 이런 걸 뭣하러 일곱 번이나 하나 싶었다. 그냥 한번에 몰아서 하지.
그리고 해원맥이 강림의 행동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부분은 상황상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웠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뭔가 싶었다. 그걸 나중에 가서 "아 그런 거였구나!"라고 해봤자 관객에겐 이미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다가왔는데... 복선이라고 해도 너무 대놓고 아닌가? 그리고 주인공의 동생이 마지막에 했던 건 어떻게 한 건가 싶었는데 이걸 하려고 주인공이 그렇게 재판을 받아왔던 것 아닌가? 아님 뭐 주인공의 동생은 처음 죽는 게 아니라서 익숙했던 거야? -_-a(그리고 염라대왕의 공허한 외침...)
그리고 전에 팟캐스트 필스교양에서 구자형 성우가 초대손님으로 나와 한 이야기가 있었는데(성우 구자형 (a.k.a. 북텔러리스트) 쿼츠북) 한국영화의 음향이 극장에서 봐도 DVD나 블루레이, 다운로드판으로 봐도 잘 안 들리는 부분이 있는 이유가 음향을 만들 때 처음에 만든 사람들끼리 시사회를 갖는 규모의 극장에 맞는 음향을 다른 곳에도 그냥 그대로 내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이 영화를 보면서도 왜 이렇게밖에 들리지 않는가 하는 우물우물하는 것처럼 들리는 부분이 꽤 있었다. 앞에서 말한대로 CG는 엄청나게 강렬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물인 음성이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익스트림 무비 같은 곳에서 원작에 비해 신파가 너무 강조되었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언급해서 그런 건가 싶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속 빈 강정에 CG+신파고물만 묻혀낸 건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어제까지 칠백오십만이나 보았다 하니 참 뭔가 싶고... 이런 영화에 다른 사람들 따라서 만천 원+알파를 붓느니 집에서 그 돈으로 그냥 좋은 영화 골라서 다운로드 받는 게 낫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