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백신접종 의무화와 지성 대 반지성주의

감기군만쉐 2017. 6. 16. 23:03

이탈리아에서 취학연령이 되지 않은 영유아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의무화하자 보호자들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심지어 "즉각적인 백신 접종은 로렌친 보건장관의 광기를 바로잡기 위해 이뤄져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누가 광기에 사로잡힌 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지만.

(백신접종 의무화에 뿔난 伊부모들 "오스트리아로 망명 신청")



이런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서 이번달에 나온 한국 스켑틱 10호에 실린 '누가 예방접종을 가로막는가?'에서는 캘리포니아에서 예방접종을 의무화하는 법안인 SB 277 발의를 두고 벌어진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간의 치열한 여론전이 설명되었다. 위의 사진과 같이 어린이들을 동원할 정도로. 법안지지 쪽이야 중병에 걸렸던 어린이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행동한 거라 할 수 있지만 반대 쪽 어린이는 불확실한 근거로 백신 때문에 마비에 걸렸다며 자신을 치료해 주지 말라는 서명을 내는 데에 동원되고 있다. 이게 무슨 비극인지... 



<시사IN> 509호 '독일은 '안아키'에 인정사정 안 봐준다'에서는 독일에서도 위와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설명했다. 이탈리아나 미국 쪽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육아원에 예방접종 상담증명서를 내지 않은 영유아의 보호자가 있으면 이걸 보건 당국에 신고해야 하고 보건 당국은 보호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을 취하는 다소 유화된 방식을 취했지만 역시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런 저항 중에선 방식의 실효성이나 육아원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 같은 형태가 적절치 않은 것을 비판하는 당연한 정치적 움직임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백신 자체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자유와 무책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노답들은 튀어나오기 마련인 것 같다. 전염될 가능성이 높고 병세도 심각한 병원균을 보유한 사람이 자신의 자유라면서 치료를 거부하면 그딴 자유도 보장하자는 건지... 디즈니 홍역을 사람들이 괜히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다들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면서 백신을 피한 결과가 참극을 낳았기에 이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홍역 환자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 당연히 대책을 세워야 될 것 아닌가?(설마 자기 사는 곳 근처엔 디즈니랜드가 없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건... -_-;)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양육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의사나 과학자라면 모를까 그렇다 해도 모든 아이들의 보호자는 자기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양육권을 주장하면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거부하는 것을 권리라고 한다니... 그럼 아이를 때리거나 이상한 것을 먹이거나 종교단체 같은 곳에 강제로 소속하게 만들어 제약을 주는 보호자도 양육권을 행사하는 것일까? 백신 msg 채식 gmo... 이렇게 늘어놓으면 전문가가 전세계 전국 방방곡곡에서 튀어나오는 신기현상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자유와 무책임을 구분하지 못한 것 외에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홍세화 저 <생각의 좌표> 중에서


최근 들어서 더더욱 이 쪽이 상식에 기초한다 과학에 기초한다 같은 말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여차하면 비상식 비과학이 여론전에서 앞서기 쉬운 상황이다. 앞서 열거한 것뿐만 아니라 개표부정 논란이나 한경오 프레임 같은 과학 외의 영역에서도 이런 이상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이걸 어떻게든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말 중우정치 외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 중우에 참여한 사람들은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사회는 후퇴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스켑틱 기사에 나온 것처럼 어떻게든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뜻을 모아 싸우는 작업을 계속하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