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의 꿈/치하라 미노리

치하라 미노리

감기군만쉐 2017. 5. 7. 02:24



동전노래방에 가서 치하라 미노리로 검색해 나오는 노래를 모두 불렀다. 그래봤자 위의 사진에 나오는 것이 전부고 아래에 있는 <미나미가> 노래로 보이는 것들은 너무 익숙치 않으므로 관뒀지만. 역시 많이 들어봤다고 해서 잘 부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마구 틀렸다. 엉터리 점수만 매기는 노래방 기계의 화면엔 관심이 없고.

치하라 미노리가 미국, 중국, 대만에 간다는 소식을 연이어 블로그에 올렸고 난 그것들을 차례차례 번역했다. 언제나와 같이 한국은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태까지 치하라 미노리가 한국과 관련해서 무슨 활동을 한 적도 없고 음반을 낸 적도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 언제나 바다 건너에 있는 존재. 내가 건너가지 않는 한 이 거리는 좁혀질 수 없다.

옛날에 <radio minorhythm>에 사연을 보낸 적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욱 심각하게 허접했던 일본어 실력을 어떻게든 동원해서 일본어 문장을 만들어 보려고 했고 말하려는 것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보내봤다. 다른 라디오에 가끔씩 도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읽히지 않았다. (그 전자우편이 제대로 보내졌는지도 의문스럽고) 그게 내가 치하라 미노리 음반 중 처음으로 샀었던 Crustacea의 Unification 3 Melody feat.Minori Chihara였다. 물론 치하라 미노리의 개인음반으로만 따지면 다른 음반이 처음이 되겠지만 이 음반을 처음 산 것으로 정해놓고 있는 것은 이 음반이 나온 날짜가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평소엔 생일 따위 의미없다고 뇌까리고 있었으면서 이런 때엔 잘도 마음이 바뀐다.) 물론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는 휴일이 아니지만 휴일 수준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이 날을 피해서 그 다음날을 발매일로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이 음반의 발매일도 그런 수순을 밟았을 뿐 특별한 날이라고 보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난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이 날짜에 어떻게든 의미를 두려고 했었고 이에 맞춰서 사연을 작성했던 것이다. 블로그를 번역하고 있다는 말도 함께 넣었었고...

내가 치하라 미노리를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팬이 그럴 것으로 생각되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서였다. 물론 여기에서 가수로서의 치하라 미노리의 팬으로 다들 바로 넘어가진 않았겠지만 상당수는 넘어갔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이 애니메이션에서 배역을 맡았던 성우들 모두에게 일단 관심을 가지는 방향을 잡게 되었고 그런 결과가 유지된 것이 스기타 토모카즈, 히라노 아야, 치하라 미노리였다. 치하라 미노리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건 <스즈미야 하루히의 격주>였는데 이걸 보다가 잠이 들었던 내가 잠에서 깼던 게 이 부분이 나왔을 때였다. 양팔을 빙글빙글 돌리는 괴상한 춤을 추며 <雪、窓辺、無音にて>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잠결에(이 상태가 아니었음 다른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멋지다고 생각한 게 시작이었다. 이 때엔 그저 치하라 미노리를 신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천상천하>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배역을 맡고 음반까지 낸 적이 있었지만 그게 잘 안 되면서 침체기에 들어있던 와중에 간신히 기회를 잡게 된 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가수 활동의 경우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기회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던 거고. 그 길거리 공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상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거기서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 누가 봐도 웃기는 소리라고 할 이야기지만 이런 감정을 계속 느껴야 했다. 위에 썼듯이 그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계기를 통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치하라 미노리가 어려워 할 때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람에 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 역시 누가 봐도 웃기는 소리다. 모르면 어떻고 알면 어떤가? 어차피 만난 적도 없는 남인데.

아마 앞으로도 치하라 미노리가 한국에 음반을 내거나 공연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내가 치하라 미노리를 직접 볼 수 있는 날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이제 와서 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니다. 다른 성우들이 한국에 음반을 내는 동안 치하라 미노리는 소식이 없었던 걸 보고 음반을 냈던 성우들의 한국 진출이 끊기면서 이 생각은 더욱 굳어졌고. 하지만 일본이 아닌 나라에서 치하라 미노리가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현상은 어김없이 반복된다. 그저 찌질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