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돌아온 촛불시위

감기군만쉐 2017. 2. 19. 11:42

그 동안 꺼려해 왔던 촛불집회에 참석했지만 역시나 오랫동안 있을 수 없었다. 어디를 가도 원 오브 뎀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사람들은 내가 안 보이는 건지 밀치고 지나가고 당연하다는 듯이 가방을 쳐댄다. 그리고 무대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다들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는 선동... 왜 힘들게 돌아다니면서 이런 곳에서 추위에 떨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박주민 의원



장훈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



오현주 작가



김성훈 4.16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



표창원 의원


본래 목적은 <대통령의 7시간 추적자들> 출판기념회였지만 연설은 이십 분도 되지 않아서 끝났고 서명회가 주행사였다. 난 책에 서명을 받아도 다 읽고 나서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이십 여분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허탈하게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보니 딱히 어디 갈 곳도 없었고... 그래서 헌재 갔다온다는 사람들 따라서 갔는데 등에 철판 같은 걸 매달고 있는 사람들이 날 자꾸 밀치고 지나간다. 뒤에 자기보다 넓적한 걸 매달고 있으면 그걸 신경써서 가야 될 것 같은데 그런 걸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눈은 자기 핸드폰에 가있었고. 그러다 보니 힘들게 왔다갔다 했던 게 다 뭐였나 싶다. 그냥 나는 그 사람들에게 왜 같이 있는 건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님 그냥 투명인간이거나.


이렇게 일이 진행되다 보니 본행사인 촛불시위 연설을 들을 기력은 전혀 없었다. 앞서 말한대로 딱히 감흥도 없는 말에 박수부대나 되어야 되나 싶었고. 게다가 뒤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뒤에 바싹 붙어서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는 듯 가방을 툭툭 건드린다. 이건 뭐 가만히 서있을 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촛불시위 연설을 짧게 본 와중에 친구사이 대표 분이 나오셨는데 뭔가 준비도 덜 되어있는 것 같고 여기에 나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박근혜 씹고 싶어서 안달이 난 맹목적 문재인 지지자들일 텐데 여기에서 문재인을 씹어서 어떤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나 같은 사람들이야 문재인이 어이없는 헛발질을 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거기에 모인 사람들 중 이런 이야기에 동의하거나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고. 실제로 내 주변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도 이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옆에서 듣던 아저씨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려면 성소수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자유당·바른정당 쪽 정치꾼들을 씹어야 되는 것 아닌가.



https://www.facebook.com/newsk.0401/videos/1547931925515056/


그런데 이런 걸 다 제쳐두고 눈 앞의 이야기만 해서 얻는 게 뭔지... 나로선 잘 모르겠다.


촛불시위에 가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두커니 있는 것이 시민참여이긴 한 건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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