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극히 개인적인 생각

동전 노래방과 한국사회

감기군만쉐 2017. 4. 12. 12:38

동전 노래방에 처음으로 가봤다.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을 통해 예상한 대로 오락실에서 자주 보았던 노래방 기계가 여러 대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좁은 공간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 가운데 비어있는 공간에 알아서 들어가는 것도 오락실과 그닥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문이 망가질 것처럼 허술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일까?

오백 원에 한 곡, 천 원에 세 곡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곡이 정해져 있는데(오천 원, 만 원 기준도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천 원 기준으로 놓고 봐도 한 곡 평균 사 분을 잡으면 십이 분이다. 오천 원 정도 있으면 한 시간 넘게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간주 뛰어넘기나 1절만 부르고 끄기 같은 걸 하지 않아도.(오히려 손해다) 오락실 노래방 기계 같은 개념이니 누가 혼자 부른다고 해서 눈치를 받을 일도 없다. 오히려 많을 수록 비좁기만 하다. 세 명이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 보였을 정도니깐.

역으로 세 명 이상 모일 일이 그닥 없어진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 명 이상이서 같은 공간에 모여서 같이 노래를 부를 일이 없다보니 이런 노래방이 흔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게 안을 보면 상당수의 방이 일부러 청소년실이라고 써져 있을 정도로 청소년 손님을 많이 상대하는 것 같은데 어린이 청소년 때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이 흔했던 우리 세대를 생각해 보면 세대 차이의 기준으로 일컬어지는 삼십 년의 반 정도 차이가 이렇게 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C방에서도 보면 옛날에 흔히 아는 애들끼리 <스타크래프트>로 4:4를 붙고 했던 모습을 요즘 들어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같이 온 걸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규모는 많아봐야 네 명을 벗어나지 않는 걸로 보인다. 어린이 청소년의 절대적인 숫자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그 숫자 내에서의 사귐의 허용용량도 같이 줄어든 게 아닌가 싶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긴 애시당초 허용용량 자체가 없는 내가 참견할 사항이 아닌가?

그리고 금액은 어디까지나 정해져 있다. 시간제 노래방의 경우 노래방 주인이 각 방의 기계에 시간을 입력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덤으로 몇 분씩 올리는 게 흔했다. 옛날에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 주인 아주머니가 그 몇 분을 몇 시간째 계속 넣으니깐 우리도 덩달아 에라 모르겠다하고 노래방에서 밤을 샜던 일이 있었는데 동전 노래방 같은 곳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런 일은 점점 더 없어진다는 것 아닌가. 비단 노래방뿐만이 아니라 모든 업계가 점점 더 규격화를 가속하고 있다. 가게 주인의 재량에 따른 상품의 무게와 가격이 아닌 처음부터 획일화되어 나온 상품을 소비자가 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게 편리하니깐 이런 흐름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겠지만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는 점점 더 딱딱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딱딱해지다 보니 그냥 원래부터 딱딱한 기계가 대신하는 게 나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전산화는 점점 더 가속을 붙이게 되는 거고...

그리고 이런 노래방의 금액은 그렇게 큰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고객층을 잡기에 유리하다. 위에 쓴대로 어린이 청소년들 같은 경우다. 그냥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경우도 일부러 시간제 노래방을 이용하느니 저렴한 동전 노래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같이 다니는 친구 연인 같은 경우에도 경제의 활성화가 요원해 보이는 데다가 비정규직 천국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그렇게 큰 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커피 같은 경우 이상할 정도로 예외지만...) 동전 노래방은 이런 사람들을 부담이 되는 노래방을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라 동전으로라도 노래방에서 돈을 쓸 수 있는 고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 양태는 다음 목표를 어디로 잡고 있을까...

어제 잠깐 이용해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간만에 들어가본 노래방에서 폐활량은 전혀 따라주지 않고 음정 박자는 예전부터 같이하지 않았고... 노래방에서 간만에 <낭만 고양이>를 부르니깐 군대에 있었을 적 엿같은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고 <All for You>를 부르고 있자니 화면에 뜨는 COOL의 모습이 대체 언제적 모습인가 싶고...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해봤자 결국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 재밌는 일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어떤 형태로 바뀌든 간에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일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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