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의 꿈/성우

성우 탓

감기군만쉐 2017. 12. 12. 17:28

<필스교양>에서 구자형 성우께서 나오신 방송을 들었는데(성우 구자형 쿼츠북) 신박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성우들이 녹음을 할 때엔 예전과 같은 성우 특유의 톤보다는 그냥 일반적으로 쓰이는 어투를 선호한다며 광고 등을 만드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그 톤을 바꿀 것을 요구했고 성우들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어쩌다가 한번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면 이상하게 성우가 녹음한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평이한 억양과 어조가 들어가 있어서 살펴 보면 성우가 맞는 경우가 많아졌다. 광고의 경우에도 상당히 평이한 어조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위의 이야기와 함께 한국에서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영상물을 만드는 곳에서 음성을 상당히 대충 처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개하기 전에 제작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보는 소규모 상영관에 적합한 음성만 만들어지고 보통 사람들이 영상을 보는 영화관이나 DVD, 블루레이, 다운로드판 같은 매체를 통해서 보게 될 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고려하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써야 되니깐 말이다. 그 결과 영상은 좋지만 음성이 개떡 같아서 뭐라고 했는지 못 알아듣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녹음하거나 더빙할 때 전문 성우가 아닌 유명인을 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질적인 음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있을 것 같은 수요를 잡으려고 이런 방법을 쓴다. 그 결과 음성이 개망하고 본래의 애니메이션 팬들도 실망하게 된다. 그런 일들이 연속된 결과 쌓여왔던 팬들의 화가 제대로 터진 것이 <너의 이름은> 사건이다.(난 결국 원판도 안 보고 있지만 워낙 시끄러웠기 때문에...) 

실제로 일반 관객들이 계속해서 더빙을 꺼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지금까지의 성우들의 방식이 문제였을까? 일본에서는 외화에 대한 더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넷플릭스에서도 언어 설정을 일본어로 바꿔놓으면 심심찮게 더빙이 이루어진 작품을 접할 수 있다.(저번에 썼던 <나르코스> 더빙은 너무 과한 고집을 부려서 더빙을 한 건지 만 건지 알 수 없었지만 -_-;) 그런 작품들을 보면 위에 써놓은 점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다들 여태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더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더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국 성우들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일본이 꼴통 보수라서 그런 방식을 유지하는 거라고 자위를 하고 싶은 건지...

사람들이 전문성이 중요하다 그런 말을 하지만 정작 돌아보면 그런 전문성이 키워지고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한국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문제긴 하지만) 성우계도 그런 식으로 전문성을 키우기보다는 전문성을 오히려 망가뜨리는 식으로 가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성우계 입문을 할 수 있는 문이 점점 더 좁아진다는데 지금이야 많은 성우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나중에 가면 지급의 좁은 문이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그릇을 유지할 수나 있을까?

예전에 "나 누구 흉내낼 수 있어요!"하면서 이걸로 성우를 하겠다고 나온 분더러 방송을 진행하는 연예인이 진짜 될 수 있겠다고 받아주면서 논란이 일었던 게 생각난다. 성우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누구보다 깊게 해야 할 방송계에서 그런 말이 나가도록 내버려 뒀다는 게 참 신박하게 느껴지는 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이다.